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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로 보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

by 행복한세상0910 2025. 3. 31.

장애인의 이동권은 단순히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문제를 넘어, 교육, 노동, 복지, 문화생활에의 접근을 결정짓는 기본권의 핵심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오랜 시간 동안 외면되어 왔고,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법적, 사회적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본 글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주요 사건과 법률 제정의 흐름, 제도의 발전, 한계와 과제 등을 역사적으로 분석해 봅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 관련 이미지

초기 무관심과 이동권 개념의 등장

1980~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은 이동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공공 인프라나 교통 시스템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당시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휠체어 이용자는 택시조차 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장애계 내부에서 ‘장애도 하나의 인간 조건이며, 이동은 권리다’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거리 시위와 사회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이동권 보장은 자립의 핵심 조건으로 인식되었고, 이에 대한 정책적 요구가 구체화되었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와 법률적 전환점

2001년 서울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는 한국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중상을 입자, 전국의 장애인 단체들은 강력한 대중 시위와 법률적 대응을 전개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열악한 교통 인프라와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구조적 비극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후 장애인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헌법소원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국회와 지자체에서도 관련 법률 제정과 개정을 논의하게 되었으며, 이동권 보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법제도상 큰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교통약자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교통약자법 제정과 제도적 기반 마련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약칭 교통약자법)은 이동권 투쟁의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 법은 교통약자,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이동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관련 시설과 서비스를 마련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상버스 도입, 장애인 콜택시 운영, 역사의 승강기 설치 등이 의무화되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신축 건축물에는 편의시설 설치가 법적으로 강제되었습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는 5년 단위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실태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에도 실행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낮고, 농어촌 지역에는 아예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며, 장애인 콜택시 배차 지연 문제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법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하철 시위와 실천적 저항의 확산

2021년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하철 탑승 시위를 통해 이동권 문제를 다시금 공론화시켰습니다. 출근 시간대 열차 탑승을 통해 열차 지연을 유도하는 방식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으나, 이는 법과 제도의 미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장애계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시위는 단순한 민원 제기를 넘어,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에 대한 집단적 표현이었습니다. 서울시와의 협상 과정에서 예산 문제와 제도 개정 논의가 다시 촉발되었으며,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논의가 재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이동권 문제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미디어에서도 단순한 ‘지하철 지연’이 아니라 ‘기본권 침해’라는 틀로 문제를 재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실천적 저항이 제도의 보완과 여론 형성에 있어 얼마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행 제도의 한계와 향후 개선 과제

2024년 현재에도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보장되고 있습니다. 저상버스는 일부 대도시에 국한되어 있고, 장애인 콜택시 이용도 공급 부족으로 인해 대기 시간이 수십 분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도와 지하철은 과거보다 개선되었지만, 역사 내 승강기 고장, 환승 구간의 경사로 부족 등 실질적 불편은 여전합니다. 더 나아가 농어촌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교통수단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장애인의 이동권은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향후 과제로는 ▲지역 간 이동권 격차 해소, ▲저상버스 100% 도입 의무화, ▲공공 인프라의 접근성 기준 강화, ▲장애인 이동서비스 종사자 처우 개선, ▲이동권 관련 예산의 안정적 확보 등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장애인의 이동은 ‘복지’가 아닌 ‘권리’라는 인식 전환이 사회 전반에 필요합니다.

결론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단지 물리적 이동의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존엄과 자유, 그리고 평등한 삶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외면받아온 이 권리는 당사자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법률적 개입을 통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과제가 많으며, 사회의 인식과 정책의 실행력이 그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동권은 단지 교통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포용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고한 권리로 인정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