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장애인의 이동권은 곧 자립생활과 사회참여의 출발점입니다. 이러한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수단이 바로 이동보조기기입니다. 휠체어, 전동스쿠터, 보행기, 자세유지장치 등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보조기기들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동보조기기 지원제도의 구조와 현황, 문제점, 당사자 사례, 그리고 실효성 있는 개선 방향을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이동보조기기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이동보조기기는 신체적 이동에 제한이 있는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로, 신체 기능에 따라 맞춤형 기기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이동식 보행 보조기, 자세유지기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단순한 ‘편의장치’가 아니라 삶의 필수조건입니다. 보조기기의 도움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에게, 이동보조기기는 학교, 직장, 병원, 공공기관 등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특히 고령 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의 경우, 보조기기는 단순 이동을 넘어 건강관리, 낙상 예방, 사회적 고립 해소 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조기기 접근은 제도적·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행 지원제도 구조와 내용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보조기기 지원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영됩니다. 첫째는 건강보험공단의 보장구 급여제도입니다. 등록장애인 중 지체·뇌병변·심장장애 등 일부 유형의 장애인은 전동휠체어, 수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자세유지용이동장치 등의 기기에 대해 일정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보건복지부 산하 장애인보조기기센터에서 운영하는 보조기기 지원 사업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상 지원이 이루어집니다. 이 외에도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 예산으로 저소득층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대상, 금액, 기기 품목, 절차 측면에서 각각 제약이 있으며, 많은 장애인이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도의 문제점과 사각지대
이동보조기기 지원제도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첫째, 지원 대상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예컨대 지체장애인이 아닌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은 보조기기 필요성이 있어도 제도상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급여 금액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동휠체어의 경우 최대 209만 원까지 급여가 가능하나, 실제 사용자 맞춤형 기기는 300~500만 원 이상이 소요되어, 결국 차액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셋째, 기기 사후관리 서비스가 부실합니다. 기기를 지급받은 이후 고장이 발생했을 때 수리비 지원이 없거나, 전문 AS 인프라가 부족해 장기간 사용이 중단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넷째,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서류 부담이 과도하여, 고령자나 정보 취약계층이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이동권 박탈로 이어지며, 장애인의 생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당사자 경험과 현장의 목소리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60대 중증장애인 A 씨는 6년 전 받은 기기가 고장 났지만, 보장구 재지급 기간(5년)이 지나야 교체가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에 다시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뇌병변장애 아동을 둔 보호자는 자세유지의자 지원 대상이 되지 않아 400만 원을 자비로 구매했다며, “보조기기가 생존의 문제인데 왜 선택의 사치처럼 취급받느냐”라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일부 장애인은 “센터에 문의해도 어떤 기기를 신청할 수 있는지부터 불분명하고, 상담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라고 호소합니다. 특히 장애 유형별로 필요한 기기 종류가 다르고, 장애의 진행 단계에 따라 기기를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현 제도는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현실과 괴리가 큽니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제도 설계자 중심의 공급 구조에서 당사자 중심의 수요 기반 제도로의 전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수요 중심 맞춤지원과 통합 플랫폼 구축
이동보조기기 지원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이 요구됩니다. 첫째, 장애유형별로 실질적 필요를 반영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대상 제한을 완화하고, 다양한 장애 특성을 고려한 기기 품목 확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급여 금액을 현실화하고, 고가의 맞춤형 기기에 대한 추가 지원이 가능하도록 예산 체계를 조정해야 합니다. 셋째, 사후관리 인프라 구축이 시급합니다. 전국 단위 보조기기 AS센터를 구축하고, 정기적인 점검 및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해야 기기의 지속적 사용이 가능합니다. 넷째,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모바일 앱이나 복지전달 시스템과 연계된 통합 신청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정보 접근성이 낮은 이용자도 손쉽게 신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책 설계에 당사자 참여를 의무화하여, 실제 사용자의 의견이 제도에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
장애인의 이동은 곧 삶입니다. 이동보조기기는 단순한 보장구가 아니라, 교육, 고용, 문화, 복지 참여의 전제가 되는 필수 인프라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 제도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 획일적 기준, 제한적 품목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장애인이 실질적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제도는 사용자 중심, 맞춤형 지원, 지역 균형, 지속 가능한 서비스 체계로 전환되어야 하며, 장애인이 이동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기 삶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며, 그 권리는 제도에 의해 보장되어야 합니다.